빅터 루소는 여러 필명으로 작품을 한 영국 작가다. 대부분의 삶을 미국에서 보내며 작가로서 주목할만한 일련의 시리즈들을 선보였다. 「아멘-라의 저주The Curse of Amen-Ra」는 미라 소설로 경장편에 가까운 분량이다.
정신병원 요양소가 있는 한 한적한 섬에서 비밀 실험이 이루어진다. 미라의 소생 실험이고, 작품 자체는 3천년의 시공간을 오가며 아멘-라 공주를 둘러싼 사랑과 배신, 환생의 울림을 전한다. 고대 이집트의 아멘-라 공주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을 앞두고 역모에 휩싸이고,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뇌와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미라가 되어 기나긴 환생의 주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환생의 주기가 끝나고 이 미라를 몰래 들려온 섬에선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본문 중에서
제1장 피쿼드 아일랜드
주변의 풍광은 어디를 보나 을씨년스러웠다. 단조롭고 어둠침침한 습지가 무성한 사초와 함께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내 앞에 있는 그곳은 의당 피쿼드 아일랜드가 분명했다. 지저분하고 굼뜬 물줄기가 그 섬을 본토와 구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서피크 만의 하류에 있는 피쿼드 아일랜드는 뭍에서 불과 30여 미터 떨어져 있었다. 허리높이의 물을 걸어서 건널 수도 있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진흙 뻘이 나를 집어삼킬 터였다.
그런 짓을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 늙은 나룻배 사공 하나가 이미 내가 있는 쪽으로 낡디낡은 배를 삿대로 밀어 좁은 물길을 건너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길 끝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노인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지역 방언으로 뭐라고 내게 소리쳤다. 그러더니 내가 닿을 수 있는 거리 바로 직전에서 그 너벅선을 삿대로 멈추게 하고는 희고 두툼한 눈썹 아래 움푹 들어간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입담배를 씹느라 지저분하고 텁수룩한 잿빛 턱수염이 나 있는 턱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허허, 뭘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내가 건너려는 거 안보이냐고요?”
“아, 건너려고? 그런데 모 땜에 건너려고 하는 거요? 눌 만나려는 거요?”
나는 그의 말을 그럭저럭 알아들었다. “댁이 아는 사람일지는 모르겠는데 닐 패런트를 만나러 왔어요. 그런데 이 섬이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는 사유지인줄은 모르고 있었네요.”
“닐 패런트? 어이쿠, 탭스 포인트에 미라를 가져다 놓은 그 작자?” 늙은 사공의 눈에 두려움이 비쳤다. “그 사람이 당신을 보려고 하지 않을 걸. 아무도 보려고 들지 않을 거라고. 처음엔 자기가 오라고 해놓고 쫓아버린 사람이 수십 명이야. 그 사람들이 그를 엄청 괴롭혔거든. 대학교수니 뭐니 그런 사람들. 아무튼 그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을 거야.”
“허허, 이번에는 달라요.” 내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짐 듀이, 패런트 씨가 특별히 내게 이곳에 와서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요.”
“짐 듀이?” 사공은 입 안에 든 입담배를 바꿔 물었다.
“옳거니. 패런트 씨가 당신이 울 거라고 말한 것 같긴 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삿대에 기대선 채로 골똘히 의심을 되씹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탈 수 있게 배를 가까이 대지 않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이보시오, 선생이 코인 박사의 미치광이들을 도와 도망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가 물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누굴 어떻게 한다고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그 노인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네일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니까 그 섬의 대부분은 롤프 코인스 박사의 사립 요양소 건물과 그 부지가 차지하고 있는데, 버지니아 주를 비롯해 여러 주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가망 없는 정신병자들이 그곳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네일은 노스 버지니아 대학의 발굴 기금에 조교로 합류하여 이집트로 떠나기 전 삼사년 동안 코인 박사와 관련을 맺었다. 그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미라들을 실험하기 위하여 그 외딴 장소를 택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나는 대학 4년 내내 그와 친구로 지냈기 때문에 그의 작업을 도와주게 된 것이다.
그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내게 그곳으로 올 수 있는지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먼저 전보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내왔더랬다.
지은이 빅터 루소(Victor Rousseau Emanuel, 1879~1960)
영국 출신의 작가로 본명은 아비그도어 루소 이매뉴얼((Avigdor Rousseau Emanuel)이다. 빅터 루소, V. R. 이매뉴얼, H. M. 에그버트, 류 메릴 등의 필명을 사용했다. 1899년 보어 전쟁에 참전했으나 몇 개월이라는 짧은 군 경험을 끝으로 귀국했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첫 소설 『더웬트의 말Derwent's Horse』을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고 1901년 미국행을 결심했다. 뉴욕에서 리포터로 일하면서 두 번째 소설 『스파르타쿠스Spartacus』를 집필했다. 이후 《하퍼스 위클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역사, 웨스턴, SF, 범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 활동의 전기를 마련한 『영혼의 의사The Surgeon of Souls』 시리즈, 『악마 의자The Devil Chair』 이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해서 성공적인 작가의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1919년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1차 세계대전 직후 고국의 어려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미국행에 올라 펄프잡지를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옮긴이 정진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무명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계 호러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펜타메로네』, 『좀비 연대기』 등을 번역했다.